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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글씨, 어필(御筆)
  • 우성훈 기자
  • 등록 2024-05-17 04:20:02
  • 수정 2024-05-17 10: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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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필 석각(御筆 石刻)'/선조(재위 1567-1608)

‘어필 석각(御筆 石刻)'/선조(위 1567-1608)

‘어필 석각(御筆 石刻)'/선조(위 1567-1608)재[우성훈 기자] 조선시대 임금님들은 서예를 가까이 하면서 교양을 넓히고 덕성을 길러나갔다.


새로 즉위한 임금은 선대임금의 어필을 수집하고 편집해 돌에 글씨를 새긴 이른바 을 제작했다. 


‘어필 석각(御筆 石刻)'/성종(재위 1469-1494)

‘어필 석각(御筆 石刻)'/성종(재위 1469-1494)

‘어필 석각(御筆 石刻)'/성종(재위 1469-1494)이는 역대 임금의 글씨를 보전하고 위업을 소중히 계승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또한 이를 탑본(搨本)해 ’열성어필(列聖御筆)이라는 책으로 엮어 역대 임금의 글씨를 널리 보급하기도 했다.


‘어필 석각(御筆 石刻)'/문종(재위 1450-1452)‘어필 석각(御筆 石刻)'/효종(재위 1649-1459)특히 선조(宣祖)(재위 1567-1608)는 스스로가 명필가였을 뿐 만 아니라, 석봉 (石峯) 한호(寒戶, 1543-1605)라는 당대 최고의 명필가를 발탁할 만큼 서예에 대한 식견이 높았다. 


‘어필 석각(御筆 石刻)'/인조(재위 1623-1649)

‘어필 석각(御筆 石刻)'/인조(재위 1623-1649)

‘어필 석각(御筆 石刻)'/인조(재위 1623-1649)이처럼 왕의 글씨는 한국 서예의 흐름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여 서예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했다./시진-우성훈 기자  


‘어필 석각(御筆 石刻)'/선조(재위 1567-1608)

‘어필 석각(御筆 石刻)'/선조(재위 1567-1608)

‘어필 석각(御筆 石刻)'/선조(재위 1567-1608)

‘어필 석각(御筆 石刻)'/현종(재위 1559-1674)

‘어필 석각(御筆 石刻)'/현종(재위 1559-1674)

‘어필 석각(御筆 石刻)'/현종(재위 1559-1674)

‘어필 석각(御筆 石刻)'/현종(재위 1559-1674)

‘어필 석각(御筆 石刻)'/효종(재위 1549-1659)

‘어필 석각(御筆 石刻)'/효종(재위 1549-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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