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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청년들의 외로움·밥 걱정 없는 아침센터
  • 백혜숙/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전문위원)
  • 등록 2022-02-14 11: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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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가 이번 대선의 캐스팅 보터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이 ‘위태한 자들’로 불리기도 한다. 뼈 아픈 현실이다. 고립의 시대, 청년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애달프기만 하다. 청년들의 우울감과 자살률이 높아만 간다. 대책이 있어야 한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부족과 과잉 문제를 서로 연결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는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있다. 콩 세 알 나눔과 더함의 지혜를 발휘할 때다. 청년 우울감을 줄일 수 있는 사회적 ‘관계재’ 확충이 시급하다. 그런 차원에서 ‘아침센터’를 제안한다.


# 2030청년은 무상급식세대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마을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촌장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머를 마이 멕이지 머.” 좌익과 우익의 구분이 전혀 필요 없는 동막골, 어쩌면 이런 곳이 요즘 청년들이 희구하는 세상일지 모른다. 먹는 게 걱정 없어야 세상이 평화롭고 사는 게 행복해진다. 국민을 굶주리지 않게 하는 일이 정치다. (쳥년 흙밥 보고서 / 변진경 지음 / 들녘)는 우울한 풍경을 보고한다. 친구의 식판을 받아 리필해 밥을 먹는 청년, 컵밥이나 밥버거로 끼니를 때우거나 식사권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등장한다. 책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봐도 현실에서의 흙밥을 먹는 청년은 무수히 많다. 그런데 청년정책에 이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하는 정치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20대 청년은 학교무상급식 원년인 2011년에 대부분 학생이었다. 고등학교까지 균형 잡힌 건강한 식단을 매일 마주했던 학교급식세대이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벗어나 사회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영양균형 식단이라는 사회건강안전망은 찾기 어렵다. 균형 잡힌 학교급식으로 다져진 기초체력으로 버티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0년에 발간한 「청년층 생활실태 및 복지욕구조사」(만 19~34세 3,018명 조사)에 따르면, “인간이 생활해 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식비의 지출 규모”가 월평균 90만 8,000원으로 조사되었다. 1인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가구 형태별로 살펴보면, ‘청년 독립 1인’ 가구는 평균에도 훨씬 못 미치는 월평균 50만 2,000원에 불과했다.


# 불안정 끝에 이르는 자살 생각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고달프다. 밥상 물가가 계속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밥상 물가가 오르면 서민들의 고통은 가중된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의하면, 작년 2분기에 전체 가구의 25%가 적자 살림 가구였고, 특히 소득하위 20% 저소득층은 절반 이상이 적자 살림이었다. 취업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자살률은 늘어가고 있다. 지난 1년 사이, 불안정 상황의 끝에 이르는 ‘자살 생각’을, 청년 100명 중 4명이 진지하게 해보았다고 한다. 통계청의 2020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자살에 의한 사망이 20대는 인구 10만 명당 21.7명, 30대는 27.1명이었다. 이는 20대 사망자 가운데 54.4%, 30대의 39.4%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결과로, 20・30대 모두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었다. 


또한 자살을 생각하는 비율도 20・30대가 가장 높다. 보건복지부의 ‘2021년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살 생각’ 비율은 1위가 30대(18.3%), 2위가 20대(17.3%)로 나타났다. 한 여론기관 조사에 의하면, 청년세대 특히, 본인 소득이 중하층 이하 저소득 가계에서 올해 살림살이가 지난해보다 나빠질 것으로 보고 있었다. 살림살이는 먹고사는 문제다. 먹는 것이라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야 일할 기운도 일할 맛도 나고, 자기 탐색이나 인생 모색의 시간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고립의 시대> 저자인 노리나 허츠(Noreena Hertz) 교수는 “한국은 미국, 중국, 싱가포르 등 주요 나라에 비해 외로움이 심각한 수준”(《서울신문》과의 화상 인터뷰)이라고 했다. 그가 꼽는 외로움의 원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불평등이 사회를 양극화시켰으며, 이것이 수많은 사람이 자기 스스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진단이었다. 즉, 외로움의 확산 이유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더 고립되기 시작하면 외로움과 배타성은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며, 포퓰리즘의 표적이 된다고까지 역설했다. 그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표를 얻은 이유도 거기서 찾는다. 그러면서 고립 사회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인・기업・정부가 함께 나서야 하며, 정부가 지역사회의 상점이나 가게가 문을 닫지 않도록 지원해야 사람들은 서로 연결된 것으로 느낄 수 있다고 강조한다.


#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관계재’ 확충되어야


이 시대의 국가는 나를 지켜주고 언제나 지지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비빌 언덕이자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어머니의 등처럼 포근함과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 국가, 내가 살고 있는 지역, 마을공동체, 동료 등이 마치 탯줄처럼 언제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수록 행복할 것이다.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관계의 따뜻함이다.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생기는 재화를 ‘관계재’라고 한다.


경제적 재화의 관점에서 정의된 ‘관계재’는 개인 단독으로는 생산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교류를 통해 획득된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면서 즐길 수 있는 재화로서, 공공재나 사유재가 아닌 제3의 재화이기도 하다. ‘관계재’의 효과는 고소득 개인보다는 저소득 개인에게서 더 크게 나타난다. 즉, 관계 시간을 늘렸을 때 ‘행복도’는 저소득 개인에서 더 높아진다. ‘관계재’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삶의 만족도가 증가한다.


#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키는 건강정책, 보장정책으로


양배추, 당근, 겨울무 등 겨울채소 가격이 폭락해서 또 갈아엎는단다. 겨울에도 땅이 얼지 않아 겨우내 채소를 생산하면서 국민 밥상을 책임져왔던 곳이 제주도다. 그러나 온난화가 가속화되어 이제는 전라남도 지역도 겨울에 땅이 얼지 않는 곳이 늘어났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한 소비 부진으로 겨울채소가 남아도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농민들의 한숨이 깊다. 가격하락을 막기 위해 정부는 수확하지 않고 밭을 갈아엎는 시장격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농산물 가격결정 시스템과 똑같이 화훼도매시장에서도 경매로 화훼류 가격이 형성된다. 작년 12월부터 꽃값이 폭등해서 소매상인과 소비자들이 울상이다. 꽃 경매 가격이 급등한 이유는 이상기후 등으로 작황이 좋지 않고, 재배 면적이 감소해 공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꽃 출하량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자본력 있는 대형 유통인이 많은 물량을 선점하면 가격구조가 왜곡된다. 줄어든 물량을 먼저 잡으려고 소규모 중도매업체들까지 가세하면서 꽃값이 뛸 수밖에 없다. 꽃 소매상인들이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생산비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직 물량으로만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폭락하면 밭을 갈아엎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땅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은 청년 농업인들조차 몰락할 지경이다. 반대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면 혼자 어렵게 살아가는 청년 소비자들의 시름 또한 깊어진다. 건강은 고사하고 적자 가계가 양산된다. 폭력적인 가격결정 방식을 고쳐야 한다. 갈아엎어야 할 것은 농산물이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이다. 잘못된 수급 정책을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키는 국민건강정책으로 바꾸어야 한다. 또한 이는 청년정책과도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한다. 취업률 상승 목표 일변도의 청년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자리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삶의 질을 보장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층적인 사회적 배제를 해소하기 위한 보장정책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보장정책에 참고할 만한 보고서가 있다. 서울연구원이 최근 공개한 ‘서울시민 만성질환 실태와 식생활 위험요인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수준의 차이로 인한 식생활 양극화가 더욱 심해졌으며, 남성보다는 여성이, 가구소득 수준이 낮거나 1인 가구일수록 만성질환 유병률이 높게 나타났다. 이에 대한 정책 방안으로 수혜자의 건강상태뿐만 아니라, 식생활 환경 여건까지 염두에 둔 세부적인 사업 설계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일례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혜자에게는 농식품 구매 바우처를 제공하고, 거동이 불편하지만 조리가 가능한 수혜자에게는 식품패키지를 제공하는 등의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소규모 청년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청년참’사업, 혼자 사는 청년을 위한 ‘혼밥족 맞춤형 건강관리 종합대책’ 등 청년이라는 대상에 적합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안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 청년들의 외로움・밥 걱정 없는 ‘아침센터’를 만들자


아침센터가 만들어지면 청년들의 식사 바우처 제공 장소로 활용되는 한편, 취업을 위한 자기 탐색이나 인생 모색 지원정책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동네식당 커뮤니티 및 전국식재료네트워크 형성, 아침꾸러미 배달, 반찬 배송, 마을부엌공동체 구성, 미식예술네트워크 구축, 커뮤니티 케어 조성 등등, 관계재를 창출하는 사회적경제 활성화의 동력이 된다. 청년들의 레시피 개발 및 시현, 자랑의 장소가 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메타버스로 건강식단을 꾸리고 체험할 수 있는 아침센터의 가치사슬은 무궁무진해질 수 있다. 또한 기업들의 ESG 활동과 연계한다면 농산물 과잉을 해소하는 출구가 될 수도 있다. 빅데이터, AI기술을 접목하여 ‘풍년의 역설’을 해소하기 위한 청년들의 창업 및 일자리 기회도 만들어질 수 있다.


‘관계재’는 서로 만나 마주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하며, 그 공간을 지속가능하고 더욱 활기차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지역화폐다. 아침센터와 지역화폐가 만나면 ‘관계재’를 더욱 풍성하게 창출할 것이다. 경기도 시흥시의 지역화폐인 ‘시루’는 좋은 예다. ‘시루’는 지역주민이 기획하고 참여하는 시민발행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시민화폐다. 동네에서 ‘시루’를 사용하면서 새로운 동네가게를 발굴하는 한편, 여러모로 지역경기 활성화와 지역공동체 회복에 기여하고 있다. 사회적 ‘관계재’는 불평등, 양극화, 1인 가족,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아침센터를 구축하고 지역화폐와 연결하는 먹거리 복지로 이어진다면, 고립 시대 2030세대에게 견고한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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