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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인생을 이야기하다”
  • 민병훈 기자
  • 등록 2019-06-02 15:5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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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베르 르빠쥬의 모노드라마 '887'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캐나다의 거장 로베르 르빠쥬의 모노드라마 ‘887’은 이 기억을 소재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자전적 이야기다.

로베르 르빠쥬의 모노드라마 ‘887’. 기억을 소재로 삶을 되돌아보는 자전적 이야기/사진제공=LG아트센터

[민병훈 기자]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캐나다의 거장 로베르 르빠쥬의 모노드라마 ‘887’은 이 기억을 소재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자전적 이야기다.


르빠쥬는 어느날 ‘시(詩)의 밤’ 행사에서 미셀 라롱드의 시 ‘스피크 화이트(Speak White)’를 낭송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런데 외워서 해달란다. 선뜻 ‘오케이’ 했지만 막상 외우려고 하니 50대에 접어든 그에게 3페이지는 길기만 하다.


‘옛날 일은 선명한데 최근 일은 기억이 나지 않는’ 생리학적 약점을 극복키 위해 그는 친숙한 기억들에 대응해 시를 외우는 ‘기억의 궁전’ 기법을 시도한다. 이 방법은 그를 자연스레 과거로 이끈다. 


그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캐나다 퀘벡의 아파트 번지수가 바로 이 연극의 제목인 ‘887’로, 생리학적 기억은 인문학적 기억으로 바뀐다.


변두리 서민아파트에서 택시운전사였던 아버지와 선량한 어머니, 그리고 누나, 여동생과 가난하지만 정겹게 살았던 그의 일상이 잔잔하고, 위트있게 펼쳐진다. 프랑스계로서 그의 정치의식에 큰 영향을 미쳤던 퀘벡 분리주의 운동을 비롯한 1960~70년대의 사건들이 배경으로 깔린다. 연출가겸 배우 르빠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천재 연출가’답게 르빠쥬는 360도 돌아가는 회전 무대장치 하나에 온 세상을 담는다. 약 2m 높이의 아파트 모형에 영상을 설치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했다. 무대를 살짝 돌리면, 현재 사는 아파트가 되고, 술집이 되고, 시의 밤 행사장이 된다.


역사적 사건들은 대형 스크린에 담아 역동성을 부여하고, 개인적인 추억은 미니어처를 실시간으로 촬영해 영상으로 띄운다. 그림자극과 마임도 곁들인다. 르빠쥬 혼자 출연하는 모노드라마이지만 마치 수많은 배우가 함께 한 듯하다. 


르빠쥬는 ‘인간에게 기억이란 이런 것’이란 식의 결론은 제시하지 않고 잇지만, 기억을 다루는 방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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