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화랑의 역사는 멀지 않다.
대중에게 유화그림이 알려지기 시작하게 된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맨 처음 반도 아케이트에 반도 화랑이 생겼다.최초의 화랑이라고 생각 한다.
그 무렵 미군부대 주변에 화랑도 몇군데 있었다.한국 고객을 위한 화랑이 아니고 한국 주둔 미국병사들이 주 고객이었다.
미대를 나오지 않았기에 그쪽 화랑의 역사는 잘 모른다.
내가 대중들과 접 하면서 유화를 하게 된 역사만 말하는 것이다.
처음에 유화는 극장 간판 출신들이 뛰어 들면서 수출그림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에 그림이 많이 팔려 나갔다. 물감도 미국에서 들어온 질 좋은 물감을 처음 접할 수 있었다.
일본도 한국 유화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홀벤이라는 물감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한국에는 그당시 물감제조 공장이 없었다.
내가 맨처음 자국인에게 그림을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명동에 있는 미도파, 코스모스백화점내에 있는 화랑이었다.
미대 졸업생들은 어떻게 그림을 판매하며 작업을 했는지는 잘 모른다.
동양화는 일찍부터 한국인들에게 알려지고 한때 최고의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그 무렵에는 한국화가 불티나게 잘 팔렸다. 전라도 쪽에는 음식점에도 동양화가 많이 걸려 있었다.
시대의 흐름에 칼라tv가 나오면서 요즘은 사양길로 접어든 듯해서 안타깝다.
대중들에게 유화그림을 알리게 된 역사는 그리 멀지 않다고 본다. 짧은 시간에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화가들이 많은걸 보면 한국인은 두되가 특출 난듯 하다.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도 된다. 대한민국은 위대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 경력.
중앙미술대전입선, 인터냇미술대전최우수상, 뉴욕아고라겔러리픽업, 뉴저지문화예술대전7회초대, 아트페어백스코.홍콩.카파.스카프.광주.한전아트센타참가, 대한민국미술대전심사위원장, 미술협회회원, 시인.수필가등단, 현대사생회초창기회원,화랑초대, 개인작품전 20여회, 앙데팡당전 초대작가, 본지 자문위원(koogg1948@naver.com)
저서 ‘난 참 저돌적이었다.’